이번엔 중남미 방문이라...
출발선에서 신발끈을 죄는 운동선수의 기분으로 잠시 깊은숨을 쉬었다.
내가 어느 날 이렇게 중남미까지 방문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중남미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거라곤 기껏해야 브라질, 브라질 하면
광적인 축구 열풍과 정열의 카니발 축제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일까,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월드컵 축구공이었고,
현란한 삼바 댄서들의 모습이었다. 지구 저편 우리와 계절이 반대인 나라,
세계 제일의 커피 원산지, 세계 3대 폭포중의 하나인 이과수폭포가 있는
곳이라는 정도가 그 뒤를 따르는 내 머릿속의 중남미였다.
기아대책기구에서 보내온 일정표를 보니 브라질을 포함하여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파라과이, 이렇게 4개국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중학교때 지도책을 보며 답안지 작성을 위해 몇 차례 열심히 외운 뒤로 어느덧
꽤 오랫 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나라 이름들이 그저 어색하기만 했다.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이자 기아대책기구의 홍보대사이신 고도원님과
기아대책기구의 정정섭 회장님, 기아대책기구 고수미, 박지만 부장,
그리고 조선일보 조의준기자, 나를 포함한 총 여섯명의 중남미
방문팀의 일정은 빡빡하고 숨돌릴 틈 없어 보였다.
일정표를 좀더 자세히 보니,
중남미 4개국을 11일만에 돌아봐야하고, 세상에...
비행기를 자그마치 12번이나 타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11일 동안 12번의 비행이라...
땅에 있는 시간보다 하늘에 있는 떠 있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은 걱정 아닌
걱정이 설레임과 함께 다시 한번 긴 호흡을 내쉬게 했다.
4월11일, 우리 일행은 마침내 장도에 올랐다.
첫번째 도착지는 코스타리카였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인천에서 출발하여 미국의 애틀랜타와 마이애미를 경유해야 했다.
인천에서 14시간을 날아 애틀랜타에 도착, 이곳에서 8시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마이애미행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비행하고, 다시 3시간을 기다린 뒤
코스타리카까지 6시간의 비행, 이렇게 무려 26시간에 걸친 여정 끝에
드디어 첫 방문지인 코스타리카의 하늘에 도착했다.
여행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일행의 얼굴이 몹시 부석해보였고,
내 몸은 파김치다. 고도원님도 고단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피곤함 가운데 약간의 '소득'도 있었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마이애미 비행기를 타기위해 기다리는 8시간 동안
방문팀은 애틀랜타 땅을 밟아보기로 결정하고, 무작정 전철을 이용해 공항 밖을
나갔다. 애틀랜타에서 돌아볼 만한 곳을 찾다보니, CNN본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CNN본사에 들러 그 유명한 뉴스채널인 CNN을
직접 볼 수 있는 경험을 했다. 'CNN의 힘', 세계적인 뉴스센터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그 거대함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그 긴 비행 여정 가운데 얻은
좋은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코스타리카는 눈부시게 푸르렀다.
가을로 접어든 남미의 대지위에는 건물보다도 푸른 나무들이(가을인데도
우리처럼 붉고 노란 빛깔은 눈에 띄지 않았다) 더 많아 집이며 건물들이 마치
나무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푸른 빛도는 자연의
힘 때문일까. 코스타리카는 풍요로워 보였고, 편안해 보였다.
코스타리카 공항에 도착하자 우리를 마중나온 사람은
이곳 기아대책기구 책임자로 일하는, 넉넉하게 생긴 미국인
스콧 마틴(Scott Martin)이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지상에서 바라본 거리는
내가 상상했던 중남미의 모습과는 달리 매우 세련되어 있었고, 또 깨끗했다.
그리고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화산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과 함께 언제 또 터질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긴장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사실 코스타리카에서의 일정은 온두라스로 가기 위한 '경유지'의 성격이었다.
스콧 마틴과의 미팅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단 하루를 보냈고,
다음날 온두라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다시 올랐다.
온두라스에 도착해서 바라본 하늘은 코스타리카 만큼이나 푸르렀고,
내게 중남미의 이미지는 '푸르른 나라'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었다.
그러나, 스콧 마틴과의 짧은 만남에서 그리고 온두라스에 도착해서 보고 듣게 된
중남미의 현실은 결코 푸르지 않았다. 소설이나 갱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얘기들이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었고, 하늘 위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경치와는 거리가 너무 먼, 어둡기만 한 경치를
내게 드러내 보여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치안부재(治安不在)가 가장 먼저 눈에 보였다.
빠른 시간에 점심을 '때우기 위해' 피자집엘 들렀는데 가게 주변에 실탄을 장전한
'무장 군인'들이 배치돼 있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갱들의 무차별
강도질을 막기위해 피자집에서 고용한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치안부재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마약과 마피아, 그리고 매춘과 아동학대, 수없이 해체된 가족들의 이야기,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유아매춘과 가족간 성폭행 등 지구 반대편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여러 형태의 보호막 아래 '안전'하게 살아온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삶들을 직접 눈으로 경험해야만 했다.
그것은 내게 조금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자신도 매춘을 위해 거리에 나와 있으면서 서너 살짜리 딸을
'유아매춘'을 시키기 위해 거리로 내몬 한 어머니가 "내가 며칠 동안 몸을 파는
것보다 어린 딸을 한번 파는 것이 돈을 훨씬 많이 벌 수 있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 상황에 나는 놀랍다 못해 가슴이 아렸다. 아니 아프고 슬펐다.
아프고 슬픈 것도 아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분노 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다.
아픔도 슬픔도 아닌 그런 분노의 감정은
아마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인 3살, 4살짜리 내 어린 여자 조카들의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한 모습과 함께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최근 횡행하고 있는
각종 성적 엽기적 범죄들이 내 머리속에 교차되며, 이건 결코 남미 사람들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가슴 깊숙이에서 회오리쳤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동안 고도원님과 더불어 많은 나라들을 방문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혜택'을 누려왔다. 이번 남미 방문도
내가 얻은 혜택중의 혜택으로, 겉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더 낮게, 더 깊숙히 들어가
그 나라 사람들의 적나라한 생활상을 여과없이 그대로 들여다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고도원홍보대사'와 함께
동행한 기아대책기구와의 여행이기도 했다.
지난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그리고 북한 방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여행도 내 삶에 특별한 선물임과 동시에 나에게
작은 사명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넓고 돌아봐야 할 곳은 아직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내가, 우리가, 그리고 어느 누군가가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했다.
내게 내려진 이 '사명'은 고단함과 아픔과 슬픔과 분노를
수반하며 여행 내내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 윤나라의 중남미 방문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