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도 말했다시피, 긴급구호는 병원으로 보면 응급수술실이다. 한달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겨우 옮겨간 상태다. 산소호흡기등 각가지 장비를 운용하려면 아직도 전문적인 기술과 각별한 도움과 자금이
필요한 시기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겨우 한달이 지났을 뿐인데 우리나라 신문, 방송은 잔인할 정도로 잠잠해졌다.
마치 한편의 공포영화를 보고, 극장 밖을 나와, 그 영화 속의 장면들이 더 이상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지난 주,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정말 깜짝 놀랐다. 전 세계가 이번 재난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고, 어떻게 극복할까를 함께 고민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읽는 한국 신문들에는 일면에도 이면에도
삼면에도 관련기사가 없었다. 겨우 국제면 한 귀퉁이에 외신발로 보도하고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갑자기
한국 언론들이 비정하다고 느껴졌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전세계의 관심의 주류에서 섬처럼 밀려져 나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정말 남아시아의 재난은 더 이상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말인가?
지금 <세계는 지구촌>이라지만 나는 <세계는 지구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집에는 아시아라는
방,
아프리카라는 방 등 방이 여러 개인데 방과 방 사이는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 옆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서로 훤히 알 수밖에 없는 집이다.
컴퓨터를 열고 인터넷만 연결하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세계 어느 곳이라도
48시간 내에 갈수 있는 요즘, 더 이상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어머, 정말 몰랐어.”라고 말할 수는
없게 되었다.
내가 7년간 세계일주를 하고, 지난 4년간 긴급구호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결론. “세계는 진짜 좁다. 튀어봐야
지구 안이구나. 지구 밖에는 단 한걸음도 나갈 수 없으니 지구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끼리는 정말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
한번 상상해보자. 우리가 평화로운 우리 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음악을 듣고 있는데 옆방에서 누군가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우리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옆방사람이 왜 그러는지
들여다보고 할 수 있다면 그 신음소리를 멈추게 도와줘야, 우리가 먹는 음식과 음악이 즐겁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사실 곤궁에 처한 다른 나라를 돕는다는 것은 세계시민으로 마땅해 해야 할 의무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이기도 한 것이다.
세계 어딘가에서 조류독감이 한 건만 발생해도 우리나라 공항부터 초비상이 된다. 만약 스리랑카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전염병이 돈다면, 겨우 비행기로 6시간 거리인 같은 아시아 내의 우리나라도
안전할 리가 없는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진실로 가슴 벅차고 멋진 일 아닌가. 세상에 태어나서 한 사람만 살려도
뿌듯한 일인데 이 긴급구호일을 통해서는 수천, 수만 명을 살려내는데 우리의 힘을 보태는 일이다.
긴급구호팀장인 나는 최전방에서 몸으로, 후방에 있는 여러분은 기도와 정성과 물질로 말이다.
이디오피아 속담에 거미줄도 모이면 사자를 묶는다고 했다.
우리 한명 한명은 거미줄처럼 힘이 없지만 그 힘도 모으기만 하면 절대 가난이라는, 기회의 불평등이라는,
전쟁이라는, 대 자연 재양이라는 무서운 사자도 묶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다고 굳게, 믿고 있다.
나는 긴급구호 48시간 대기조, 지금이라도 전세계 어느 현장에서 출동명령이 내려오면 48시간 이내에
그곳에 가 있어야 한다.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는 대기조이지만, 출동명령만 받으면 힘이 솟는다.
단 걸음에 달려가 그놈의 ‘사자’를 꽁꽁 묶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여러분 모두가 만들어준 ‘거미줄 동아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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