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는 긴급구호팀장이지만 국제본부에서는 물자배분담당요원이다. 이번에도 현지직원 및
국제직원 100여명이 돌아가면서 초기 30일간 피난민에게 꼭 필요한 비상식량과 담요, 플라스틱 깔개 등
피난처 물품 그리고 비누, 마스크 등 생필품을 4만 명의 주민에게 나눠주고 있다.
어린이 보호소 운영도 초기 30일간의 중요한 초기긴급구호 프로그램이다. 날마다 그 많은 시체 사이를 오가며
처참한 모습을 보고 그 독한 냄새를 맡아야 하는 이곳 어린이들의 마음의 충격과 상처를 잘 보듬어주는 일이다. 더불어
참사 중 부모를 잃은 아이들, 눈앞에서 식구가 떠내려가는 것을 본 아이들을 정신적으로 위로해주는
일이다. 마음껏 말하고 슬퍼하며 울 수 있도록, 그러나 아이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용감한 생존자임을
심어주기 위해 그림, 간이연극들을 이용한 심리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위에서 말한 무스타파도 심리치료가 꼭 필요한 경우이다. 무스타바는 해일이 몰려올 때 8살 난 여동생 에드나를 안고
있었는데 파도에 휩쓸려 그만 놓치고 말았단다. 아직도 에드나가 떠내려가면서 “무스타파, 톨롱 톨롱
(오빠, 살려줘)라고 외치던 소리가 귀가에서 떠나지 않는다”며 “그때 내가 동생을 더 꼭 잡고 있어야 했는데..”
라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깊은 자책감에 실달리는 무스타파! 그것이 어찌 이 12살짜리 꼬마의 죄겠는가 말이다.
물론 긴급구호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아체의 경우, 가장 피해가 심한 서해안은 헬기 이외에는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 피난민들이 대부분 친척이나 친지 집에 거처하기 때문에 숫자파악과 체계적인 배분이
힘들다. 불결한 집단생활의 불청객 홍역, 콜레라, 이질 등 전염병은 물론 말라리아 창궐도 우려된다.
또한 아체는 보수적인 이슬람 지역으로 하루 5번 기도시간, 특히 금요일 정오에는 배분활동을 멈춰야 한다.
앞으로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 지역 내 NGO활동을 언제까지, 어디까지 허용할지도 큰 관건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런 외부적 어려움보다는 “우리 나라 사람도 힘든데 왜 남의 나라까지 도와야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 더 어렵다.
내 대답은 이렇다. 그 ‘우리’라는 개념을 조금만 넓히면 되지 않을까? 우리 집, 우리 동네, 우리 나라에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아시아는 우리 대륙이고 전 세계는 우리 세계가 되는 것 아닌가. 무서운 대참사에서
혼자 살아남은 무스타파도 우리가 돌봐야할 ‘우리 아이’라고 여기면 답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번 참사를 ‘우리 대륙의 고통’이라며 긴요한 물자와 자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최전선 구호요원의 한명으로
정말 고맙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그 정성이 현장에서 깨끗한 물이 되고, 식량이 되고 담요가 되고
기초약품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 자리를 빌어 꼭, 말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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