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연설 비서관을 지낸 고도원(57)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은 남매 둘을 소리 소문 없이 다니던 교회에서 결혼시켰다. 2005년 12월 하객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딸 새나(30)씨 결혼식을 치를 때는 축의금을 사양했다. 작년 10월 아들 대우(27)씨를 결혼시킬 때는 아예 청첩장도 돌리지 않고 친지 100여명만 초대했다. 잔치 음식은 부인이 직접 김치를 담그고 불고기를 재 마련했다. 고 이사장은 "딸 결혼식은 500만원, 아들은 400만원 들었다"며 "오래 전에 한 다짐을 행동에 옮겼을 뿐"이라고 했다.
"학생운동 하다가 연세대에서 제적됐을 때 아내와 결혼했어요. 포장마차 등을 해서 먹고 살았죠. 1000~2000원 하는 지인들의 결혼식 축의금이 부담스러웠어요. 절친한 후배의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사양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나중에 나도 저렇게 하자'고 마음먹었지요." 사회 유명 인사들 중에는 호화 결혼식으로 구설에 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조촐하고 우아하게 식을 치른 이들도 많다. 반기문(65) 유엔사무총장과 유명환<(63) 외교통상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하객은 직계가족과 가까운 친척, 신랑신부의 친구 등 150명이 전부였다. 혼주 측은 "원래 100명만 초대했는데, 손님들이 더 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결혼식에서 넘친 부분은 이 대목뿐이었다. '혼배미사'로 치러진 결혼식은 식장 대관료도 없고, 화환도 없고, 붉은 카펫도 깔리지 않았다.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유엔사무총장 외아들의 결혼식과 한국 교포들이 일상으로 치르는 성당 결혼식엔 다른 게 없었다. 반 총장은 다른 사람의 경조사는 성심껏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자신의 경사는 밖으로 일절 알리지 않았다. 반 총장은 외교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큰딸과 막내딸 결혼식을 비밀리에 치렀다. 반 총장은 아들 결혼식에 대해 "결혼은 가족끼리 치르는 행사로 조용하게 치르는 게 합당하다"며 "남에게 알려지면 서로 부담"이라고 했다. 유 장관은 지난달 30일, 같은 외교부 직원으로 근무하는 딸 현선(34)씨를 서울 도심 모 호텔에서 결혼시키면서 외교부 안팎에 일절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유 장관 부부와 사돈 내외는 개인적으로 절친하게 지내는 이들 50여명에게만 청첩장을 돌렸다. 축의금과 화환도 받지 않았다. 일부 외교부 간부들이 결혼 사실을 알고 장관의 의중을 타진했지만 유 장관은 "오지도 말고,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도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김천주 회장은 "딸 결혼식은 사돈댁 의사를 존중해 남들 하는 대로 치렀지만 아들 결혼식은 절친한 사람 100명만 초대해 축의금을 받지 않고 검소하게 치렀다"고 말했다. 봉두완씨는 2005년 3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의왕시 성 라자로 마을에서 장남 결혼식을 치렀다. 봉씨가 30년 넘게 후원해온 기관이다. 양가 친지가 15명씩 참석했고, 축의금은 받지 않았다. 이세중 전 변협회장은 호텔에서 치르는 결혼식 주례는 모두 거절하고 있다. 손봉호 교수는 "최근 10년 동안 호텔 결혼식에 참석한 것은 혼주가 절친한 친구였던 경우 2건뿐"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검소한 결혼식 풍조를 세우려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미덕과 결단'에만 의지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생개협 사무총장 신산철(50) 목사는 "특급호텔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된 1999년 이후, 검소한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마음먹었던 인사들도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이승신(여·54) 교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축복을 해줄 수 있는 이들만 모인 결혼식이 의미가 있으며, 그런 사례들을 꾸준히 교육시키면 다음 세대에는 한결 달라진 결혼문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특별 취재팀> 정지섭 기자 xanadu@chosun.com 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 박순찬 기자 ideachan@chosun.com 윤주헌 기자 calling@chosun.com 이신영 기자 foryou@chosun.com 최종석 기자 comm@chosun.com 한경진 기자 kjha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