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내게 정말 특별했다.
이렇게 내내 가슴이 아프고, 가는 곳마다 기적과 감동의 순간을 만날수 있었던 여행,
이전에는 없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도 절감했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아름다움도 함께 보았다.
중앙아시아 곳곳에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한켠에선 희망의 불빛도 반짝이고 있었다.

기아대책기구가 아침편지 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에게 '홍보대사'라는 직함과 함께 '특별 여행'을
요청해 온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문화재단 설립과 방송 진행 등 이런저런 이유로 늦춰졌던,
그러니까 무려 1년여만에 성사된 특별 여행이었다.

중앙아시아.
나로서는 사실 그 이름조차 낯선 곳이었다.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타지키스탄 3개국을 고도원 홍보대사님과 함께 둘러보고 돌아온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간략하게나마 표현해본다면, 우선은 땅은 넓으면서도 물이 없는 나라,
땅속에는 석유가 있는데도 전기나 가스가 매우 귀한 나라, 사람들의 비참하고 궁핍한 생활상들,
고려인들의 서글픔 등등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절로 생기게 하는 나라,
참 어려운 나라,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또한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이 선명했던 나라, 여러 사람의 투혼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존재하는 나라,
매우 삭막하고 또 매우 지저분하지만 그 다듬어지지 않음이 오히려 아름다웠던 나라, 사람들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게하며 기적같은 일들을 해내도록 사명감을 불태우게 만드는 나라, 나도 작지만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만든 나라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겉핥기식 관광여행이 아니었다.
속으로 깊숙히 들어간 여행이었다. 그런 점에서 더욱 특별하고 남다른 여행이었다.
아침편지에서 일하게 되면서 행운처럼 찾아왔던 몇몇 여행에의 동참으로 그래도 많은 곳을 돌아봤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번 여행이 내게 남긴 감동과 체험은 다른 여행과 비교하기 어려운 잔잔한 파문을 던져주었다.

그동안의 여행이 '수박겉핥기'란 말처럼 수박의 색깔도 살펴보고, 두드려도 보고, 겉도 만져보고, 혹은 쪼개서
익은 정도와 당도를 확인한 정도였다면 이번 여행은 직접은 아니지만 수박의 씨를 뿌리고, 수박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는 듯한, 그래서 그냥 수박이 달다, 잘 익었다 하면서 먹어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수박이 그렇게
익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어려움을 견뎌냈는지를 체험해보는 숙연함과 고마움이 있었다.

방문 첫날 키르키즈스탄의 뗄만이란 작은 시골마을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학교와 마을을 돌아보고 마을 주민에게 초대도 받아 나름대로의 융숭한 대접도 받고, 장애를 가진
아이의 집도 방문했다. 우리보다 해가 빨리 져 오후 4시가 넘어가자 바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 시각쯤 우리는 장애를 가진 아이의 집에서 나왔고, 시골마을의 집들이 하나둘
불빛을 밝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장애를 가진 아이의 집에 직접 들어가 그 아이와 함께 얘기나누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도 마을 집들의 창문 밖으로 새어나오던 그 따뜻한 노란색 불빛에 속았을 것이다.
결코 밖에서 보는 것처럼 저 노란 불빛이 집안에 온기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집안에 두꺼운 옷을 입고 앉아있는데도 시려오는 손발을 어찌할지 몰라
비벼댄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그곳에서 나는 가난이 무서운 사람들을 보았다.
작은 예지만 물도 전기도 가스도 귀한 나라에서 우리나라보다 두배는 추운 겨울을 지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지옥같은 삶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의 고통스러운 삶이 분명했다.
더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그 추위 속에 방치되다시피한, 작고 또는 병든 몸으로 그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헐벗은 아이들을 보는 것이었다.

나는 두 차례에 걸쳐 아침편지에서 떠났던 '몽골에서 말타기'를 다녀왔고
그때마다 몽골의 어린이들을 유심히 지켜봤었다. 광활한 대초원에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없던 몽골보다
겉으로 보기엔 더 나은 인프라에, 집에, 더 나은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몽골에서 만난 씩씩하고
생기넘치던 아이들과는 비교하기 힘든 궁기와 비참함과 궁핍함, 그리고 희망을 빼앗긴 듯
촛점없는 눈동자에 깊이 배인 슬픔을 모른척하기란 쉽지 않았다.

기아대책기구에서 왜 고도원님 같은 홍보대사가 필요하고,
왜 그런 어려운 곳으로의 여행을 계속해서 기획해야만하는가에 대한 해답도 거기에 있었다.
우리 돈으로 한달에 2만원이면 한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100달러만 있으면 지도자가 되고 싶은
한 젊은이가 아내와 두 아이들의 생계도 꾸려가면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나라였기에 말이다.

이번 여행이 소중했던 특별한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아침편지가 기아대책과 함께 작은 씨앗을 뿌리고 돌아왔다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조금만 아껴쓰면 모을 수 있는 작은 돈이 이곳에 사는 한 아이의 인생에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눔이며, 함께 나누며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이 여행에
왜 오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그 경험이 어쩌면 내 인생 또한 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내가 보고 느끼고 겪고 왔다는 사실이
나에게 커다란 기쁨을 주었다. (내일 계속 됩니다)

- 글/사진 아침지기 윤나라






키르키즈스탄의 수도 비쉬켁의 집과 가로수.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리풍경으로 우리의 포플러 나무처럼 쭉 뻗은 가로수가 인상적이다.




당나귀 달구지. 뭐가 담겨있는지는 몰라도
파란 플라스틱통 하나를 덜렁 싣고 마을을 유유히 가로지르고 있다.




어린이 놀이터. 주변에 놀이터가 없어
아이들은 조금 위험한듯 보이는 가스관을 미끄럼틀 삼아 놀고 있다.




What I want to bee??? 학교마다 영어공부에 열중이긴한데...
영어교실에 걸린 교재의 오자(?)가 옥의 티.




일일교사. 크륵크스 아이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고도원 기아대책 홍보대사.




학교앞 문방구. 만물상처럼 여러가지를 팔고 있지만,
진열된 상품들에서 궁핍함이 엿보인다.




남의 집에 들어간 낯선 외국손님들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엿보는 시골 아이들.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집의 내부.
창문엔 햇빛이 가득한데도 방안은 어둡고 차가운 공기가 가득하다.




부엌. 아궁이에 걸려있는 솥단지 하나, 빵굽는 구덕, 땔감으로 쓰이는 목화나무 한묶음.



양고기 스프. 식사 맨처음에 나오는 것으로 양고기 냄새가 나지만 먹을만 하다.



키르키즈스탄 사람들의 주식. 밀가루를 튀겨 만든 것으로
그릇에 담지 않고 상위에 잔뜩 뿌려 놓고 먹는다.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전통복장의 학생들. 미모가 뛰어나 대표로 뽑힌 듯하다.



만년설산. 생활은 옹색하고 겨울 들판은 황량해보이지만
멀리 보이는 만년설산은 절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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