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결코 나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었다.
고도원님과 함께 한 배움의 여행이었고, 어려움에 처한 중앙아시아와 첫 만남의 여행이었고,
기아대책이라는 의미있는 일을 하는 기구와의 깊은 체험 여행이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기적을 보고, 놀라며 눈물 흘린 감동의 여행이었으며, 돌아와서는 부족한 글이지만 관심가지고 읽어준
136만 아침편지 가족들과 함께 공유한 마음의 여행이었다.

내 인생에 너무도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이번 여행에서 나는 몇가지 행복한 과제를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첫째, 일림의 수술 경과를 지켜보는 일 (여행스케치 2편 참고),
둘째, 추이 미래지도자 학교에 책등 필요한 것 보내주는 일 (스케치 3편 참고),
셋째, 아침편지 가족들과 함께 마를레스 등 키르키즈스탄 아이들의 CDP후원을 계속하는 일 (스케치 4편 참고),
넷째, 우즈벡의 가일아트에게 학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일 (스케치 5편 참고),
다섯째, 고려인 3세 태바짐의 역사 기록 남기기에 힘 실어주는 일 (스케치 6편 참고),
여섯째, 타지키스탄 이종분목사님의 사역을 위해 기도해드리는 일 (스케치 7편 참고).

여기에 한 가지를 과제를 덧붙인다면 그것은 고려인들의 실상을 좀더 소상히 알려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수 없을까 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앙아시아의 구석구석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우리는 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저녁 식사 초청을 받았다.

훤칠한 키에 격의없이 시원시원하게 말씀하시는 문하영대사님을 통해 우리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
20만명의 고려인의 실상에 대해 더 상세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고려인들에 대한 국가차원에서의
정책적 배려가 매우 시급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현지 고려인들의 현실적인 어려움 중 가장 큰 문제가 언어의 문제였다.
그들은 구소련 시절 러시아 말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우즈베키스탄 말에 익숙하지 못해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우즈벡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실정이다보니 많은 고려인
청년들이 러시아 비자도 없이 무단 입국해 우범지역에 불법 체류하면서 최하류 생활을 하거나, 각종 범죄단체의
하수인 노릇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형편에 놓인 것이다. 모스크바나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창녀와 거지는
모두 고려인들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현지 고려인들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으로 문대사께서 제시한 '1석3조 효과론'은
대충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일정한 수의 고려인들을 우리나라에 입국케해 취업을 시키면 우리에게는 '인력 보강'의 효과가 있다.
둘째, 이들이 다시 우즈벡으로 돌아오면(한국에서 2~3년만 일하면 우즈벡에서 집도 사고 웬만한 사업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경제적 기반과 함께 우즈벡 사회의 중산층을 이룰 수 있다.
셋째, 한국 입국시 일정한 시험을 치르게 해 한국말을 잘하는 순서대로 선발하면 '눈에 불을 켜고'
한국어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1년에 가능하면 1천명, 그게 어려우면 5백명이라도 꾸준히 한국에 보낼 수만 있다면 이곳 우즈벡 고려인들
삶이 확실하게 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문대사님은 독일을 예로 들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구소련 해체 후 이곳에 머물던 30만명의 독일인중 26만명을
고국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귀국 희망자들은 '이히 리베'만 할 줄 알아도 독일로 보냈을 정도인데 반해 고려인의
고국행은 1%도 안 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문대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무언가 국가 차원의 정책이
하루 빨리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앙아시아 여행을 다녀온 지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워낙 깊숙하게 들어갔던 여행이었던 만큼 현실로 돌아오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연재하기 시작한 이 여행스케치로 인해 내 머리속이나 가슴은 여전히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다.

내내 가슴을 아프게 했고, 수많은 기적에 놀라게 했으며, 꿈을 다시 꾸고 이룰 수 있게 해주었고,
엄청난 교훈과 체험을 배우게 했으며, 현재의 내 삶에 다시없는 감사과 소중함을 더해준 여행...

휴, 이 글을 마치고 있는 지금에서야 겨우 집에 돌아온 기분이다.


*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번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 고도원님과, 정정섭부회장님을 비롯한 기아대책 모든 분들.
그리고 함께 동행하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최대원목사님과 조옥순 사모님, 여행내내 좋은 영상을 담아내기
위해 촬영하시느라 식사도 매번 놓치셨던 CTS의 박성진 부장님, 특히 이번 여행 준비와 진행을 위해 열심히
뛰어주신 박종호 간사님, 그리고 너무 열심히 뛰어서 신발 밑창까지 벌어져 돌아왔고, 돌아와서는
아침편지 가족들의 전화 문의를 받느라 목이 쉬어버린 김은아간사님께...
함께 해주셔서 더더욱 뜻깊은 여행이 되었음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거기에 더해 돌아와서 연재했던 부족한 제 여행스케치를 읽어 주시고, 특히 기아대책에 직접 전화를 걸어
CDP 결연을 맺어주신 많은 아침편지 가족들께...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윤나라의 '중앙아시아 여행스케치'는 오늘로 끝입니다.
감사합니다.

- 글/사진 아침지기 윤나라








특별한 만남으로 중앙아시아 여행중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일림, 유상길, 마를레스, 이종분, 가일아트, 태바짐님.




일림의 그림.
그림에 소질이 있는 장애아 일림은 지금 김옥렬 목사의 도움으로 치료의 길이 열렸다.




키르키즈스탄 추이미래지도자 학교 개원식날, 학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유상길님.
일림의 수술 일정 등 현지 소식을 메일로 보내주고 있다.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는 마를레스는 고도원님과의 결연으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



고려인 태바짐(오른쪽에서 두번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일대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시작했다.




꿈을 가진 청년, 가일아트.
누군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갖게 된 가일아트.
오른쪽은 기아대책 정정섭부회장님.




타지키스탄 치카레스카 시장 바바이에프(가운데)와 함께 담소중인 이종분 목사님(맨 오른쪽).
타지키스탄을 크게 변화시키는 '기적'들을 일궈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한국 대사관.
여행 마지막 날 대사관의 초청을 받아 저녁식사를 하기 전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두 '대사'의 대화. 왼쪽은 문하영 주 우즈베키스탄 대사이고 오른쪽은 고도원 기아대책 홍보대사.



대사관에서의 저녁 식사에 앞서 고도원님이 건배 제의를 하고 있다.



대사관 식구들과 함께.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동호 KOICA소장, 조옥순 사모, 김흥윤 참사관, 백범흠 참사관,
이영우 집사,박종호 간사, 정송현 장로, 최대원 목사, 고도원 홍보대사, 문하영 대사님.




인천공항에서. 이번 방문팀 8명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박종호 간사, 김은아 간사, 조옥순 사모, 최대원 목사,
고도원 홍보대사, 윤나라 실장, 박성진 부장, 정정섭 부회장님.




아이들과 함께한 아침지기 윤나라 실장.
이번 여행내내 사진을 찍고 '중앙아시아 여행스케치'도 쓰느라 수고를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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