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키즈스탄 여행중 중요한 일정중의 하나가 바로 '추이 미래지도자 학교'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추이 미래지도자 학교'는 '추이'(키르키즈스탄의 수도권을 관장하는 도단위의 도시로, 우리의 경기도쯤에
해당됨) 지역에 세워진 특별 학교이다. 이 학교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개해야 할 중요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유상길님이다.

내가 유상길님을 처음 본 것은, 한국을 떠나 첫번째로 도착한 나라 키르키즈스탄의 비쉬켁 공항에서였다.
이 공항에 첫발을 디딘 시간이 현지시간으로 밤 12시였는데, 마중나와 기다리던 그분을 처음 보았다.
차갑고 딱딱한 듯한 인상, 작은 체구이지만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눈매가 그 분을 본 첫인상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기아대책이 준비해간 의약품의 통과 문제로 공항에 3시간 이상을 발이 묶여 있는
답답한 상황 때문에 그 분의 첫인상이 그렇게 딱딱하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멀리서 온 손님들이 밤늦은 시간에 '말도 안되는' 이유로 오랜 시간 움직일 수 없는 데서 오는
당혹감과 걱정, 그리고 책임감이 그이의 표정을 그렇게 차갑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니까.

현지 인터넷 사정 때문에 고도원님과 나는 그 분의 자택에 짐을 풀게 되었고, 이틀 동안 기숙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분의 첫인상과는 전혀 다른 면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말하자면 '추이 미래 지도자 학교'의
설립자이자 교장선생님이었다. 3개국어(한국어, 러시아어, 키르키스탄어)에 능통한 실력에 엄청난 열의와
침착함, 그리고 세심하며 따뜻한 배려가 그의 첫인상을 완전히 바꾸어주었다. 청학동에 사시는 부모밑에서
유일하게 대학까지 다닌 아들이었고, 특별한 소명감으로 이국에서 청춘을 불태우는 사람,
그런 사람이기에 부인과 세아이를 키우며 이 어려운 나라에서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작은 기적을 이룰 수 있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 키르키즈의 현지 상황이나 생활상, 문화 등을 완전히 파악하기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상길님의 뼈속까지 파고든 경험담은 한마디, 한마디가
살아있는 영상이 되어 내 머리 속에, 가슴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키르키즈스탄의 현재 상황은 우리나라의 60년대 이전 시대를 그려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그 시절보다 휠씬 더 열악한 상황인지도 모른다. 구소련의 몰락으로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생계를 이어갈 일자리를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주의의 폐해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길거리에서 빈둥빈둥 젊음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었다. 평균소득이 20달러 미만,
우리 돈으로 치자면 2만4천원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사실 우리나라 60년대 풍경보다
더 지독한 가난과 궁핍의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한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곳의 진짜 문제점은 가난도 질병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바로 꿈과 희망을 잃은 그 곳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꿈도 희망도 의욕도 노력도 상실한 채, 가난과 질병의 고통 속에 그대로 몸을 담그고 앉아 그 괴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 자체가 이곳 사람들에게 내려진 가장 무서운 형벌처럼 느껴졌다.

'추이 미래지도자 학교'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세워졌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버려진
유치원 건물을 개조하고, 인근 4만평의 농토를 49년간 정부로부터 임대받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 새로운 과학 영농 지식과 경영 방법을 가르쳐, 미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한
'정신 개조 및 생활 재건 학교'에 다름 아니었다. 우리로 치면 70년대 세워진 '가나안 농군 학교'라
할 수 있었고, 실제로 가나안 농군학교의 교육 방식을 많이 도입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이 바로 이 학교의 완공일이자 개원식날이었다.
개원식 행사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완성된 학교 곳곳의 사진을 찍으면서 내 머리속은 온통 무엇이 이 분으로
하여금 이국만리에 와서 이런 힘든 일을 도맡아 책임지고, 행하여 이루게 했을까 하는 물음으로 가득했다.
희생정신? 헌신과 봉사? 그것이 좋은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모든게
과연 가능했을까? 특히나 이렇게 먼 나라 타지에서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전혀 다른 사람들과
어렵게 소통해가면서 이런 일을 이루어내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런 일을 하게 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중앙아시아를 돌면서 나는 유상길님 같은 이들을 많이 만났고, 가는 곳마다 이 의문은 따라다녔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그 답을 찾아낼 거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나라, 특히 한국에서 보내온 286 컴퓨터, 우리나라에서는 쓰레기로도
처치가 곤란한 그 컴퓨터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쓰이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평소 하찮게 취급하던 작은 물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얼마나 귀하고 요긴한 물건이 되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여행이기도 했다.

추이 미래 지도자 학교에는 도서관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책장은 텅 비어 있었다. 이 빈 책장이 한국에서 나온 좋은 책들로 많이 채워지기를
유상길님은 바랬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 꿈과 희망을 잃은 이곳 젊은이들에게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키르키즈어로 번역해서 돌려보게 하고 있습니다. 혹시 아침편지에서
나온 책이 있다면 그 책들도 함께 번역해서 학생들에게 읽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도원님이 선뜻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다행히 제가 낸 책이 몇권 있습니다. 귀국하는 즉시 그와 함께 몇 권의 좋은 책들을 더 보내드릴테니,
다음 일은 유선생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한국에 돌아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책을 챙기는
내 손이 한없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네번째 여행스케치는 수요일에 계속 됩니다)

- 글/사진 아침지기 윤나라






키르키즈스탄 룩셈부르크면에 세워진 추이농업지도자훈련원.

폐허가 되다시피 한 유치원을 리모델링하여 만든곳으로
함께 동행했던 기아대책 식구들이 밖에 나와 살펴보고 있다.




취재열기. 이 나라에서 이 학교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듯, 많은 취재진이 찾아왔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람(맨오른쪽)이 유상길님.




학교의 설립자인 유상길님이 개원식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개원식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볼롯 부지사와 무랏 싸를리노프 군수(오른쪽부터).




기념 촬영. 개원식에 참가한 주요 인사들.
왼쪽 두번째가 유상길님이고 그옆으로 볼롯 부지사, 정정섭부회장, 고도원, 최대원님.




테이프 커팅.
기아대책기구 임원진과 지역 유지, 훈련원 책임자가 개원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컴퓨터실. 기아대책기구에서 보내준 컴퓨터로, 아직 인터넷은 되지 않는다.



도서관. 도서관은 마련되어 있으나, 책장은 텅 비어있다.
아침편지에서 몇권의 책을 보내주기로 했다.




기숙사. 학생들의 집중적인 교육을 위한 기숙사까지 마련되어 있다.



축하인사를 하고 있는 고도원 홍보대사.
기아대책기구의 홍보대사 자격으로, 참석한 사람들에게 꿈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인사말을 듣고 있는 지역 사람들1.



인사말을 듣고 있는 지역 사람들2. 현지 사람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특별 공연. 행사를 마치고 특별 공연까지 준비했다.
이곳에서는 이런 행사들이 많지 않아 매우 귀한 시간이 되었다.




학교를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한 점심식사. 한국 음식이 곳곳에 눈에 띈다.



현지에서 만난 아침편지 가족 부부. 타지에서 받는 아침편지가 많은 힘이 되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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