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魯迅)의 《고향》 중에서-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2001년 8월 1일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이메일 편지함에서 낯선 형식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로부터 만 5년이 흐른 지난 8월 1일. 이날은 170만 명에 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이메일로 받았다.
170만 명의 행복 공동체 일궈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연설담당비서관으로 재직했던 고도원(54)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이 운영하는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올해로 출범 5주년을 맞았다.
고 이사장은 1일 자신의 첫번째 아침편지를 5주년 기념편지로 다시 띄우며 “좋아하는 몇 사람에게 보냈던 첫 아침편지가 ‘행복 바이러스’처럼 무섭게 번지고 퍼져서 이제 170만 가족의 아름다운 행복 공동체로 자라났다”고 기쁜 감회를 밝혔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고 이사장이 자신이 읽은 책 속의 인상적인 구절에 본인의 단상을 보태 만든 글을 이메일로 주변 사람들에게 배달한 데서 처음 씨앗이 뿌려졌다.
그가 이런 일을 시작한 것은 책 한 권과 그 속에 적힌 글 한 줄이 사람의 운명과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굳이 운명이나 인생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가슴에 와 닿는 글은 사람에게 힘든 일상을 달래주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아침편지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고 이사장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뜨거웠다. 첫 편지 발송 6개월 만인 2002년 2월 5만 명에 도달한 ‘가족’(매일 아침편지를 받는 회원) 숫자는 같은 해 11월에는 그 10배인 50만 명을 돌파하고 2003년 8월에는 100만 명을 넘어서는 증가세를 보였다.
짧지만, 결코 짧지않은 여운
도대체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침편지문화재단 최동훈 실장은 이에 대해 “아침편지에서 받은 짧지만 가볍지 않은 감동 때문이 아닐까. 바쁜 일상 속에서 소중한 가치들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 가치들의 의미를 새삼 일깨우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 성공 요인인 것 같다”고 풀이한다.
이런 해석은 ‘가족’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무려 3,700개 가까이 올려진 5주년 기념편지의 댓글에서 송유희 씨는 “아침편지를 읽으며 삶의 한 귀퉁이를 접었다 펴는 심정으로,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며, 다가올 미래를 긍정하는 힘을 얻게 된다”는 소감을 밝혔다. 대부분의 댓글은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감동을 받고 힘을 얻었다’는 메시지는 같다.
인터넷 인구가 폭증하고 이메일 사용이 보편화됐다는 점도 아침편지 확산의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특히 편지를 읽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형식으로 회원 수를 늘려가는 독특한 운영 방식과 편지에 대해 소감을 남기는 ‘느낌 한마디’ 코너는 아침편지에 대한 공감대를 급속하게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 이사장이 평소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행복이 이메일을 타고 ‘바이러스’처럼 널리 퍼진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문화평론가는 “현대인들은 각박한 생존경쟁에 치여 주변은 물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갖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그런 속에서 아침편지는 이메일이라는 누구나 접하기 쉬운 디지털 문명 이기를 통해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되살림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침편지의 은근한 힘은 실제 편지를 접한 사람들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인생의 태도를 바꾼 경우가 적지 않다는 데서도 발견된다. 다음은 최근 아침편지가 진행 중인 ‘나를 변화시킨 아침편지’ 행사에 자신의 경험을 보내준 한 회원의 편지.
행복은
고통을 이겨내는 자에게 더욱 값진 것이다.
기쁨은 슬픔을 극복했을 때
진정한 내 것이 된다.
-레오 버스카글리아의《아버지라는 이름의 큰나무》중에서-
이 편지를 받았을 때는, 어렵게 가진 쌍둥이 아기들이 제 곁을 떠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요. 가족들 앞에서는 내색을 못하고, 저 혼자 힘들어서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이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기들 태명이 ‘행복이’랑 ‘기쁨이’었거든요.
아기들 이름과 같은 제목을 읽고, 마치 저를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떠나간 제 아기들을 기억하기 위해 보내는 글처럼 느껴졌어요. 백 마디 말보다, 이 짧은 글이 저에게 많은 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2년여 시간이 흐른 지금 저는 사랑스런 한 아기의 엄마가 되었답니다.
자살·이혼 직전 마음 바꾸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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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사장은 이보다 더 감동적인 사연을 담은 감사의 편지를 개인적으로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자 결심했던 날에 아침편지를 읽고 생각을 바꿨다거나, 이혼을 결정한 날에 편지를 받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등 내용도 극적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편지를 쓴다는 게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가 편지 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도 바로 이 같은 편지의 힘 때문이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온갖 스팸메일과 쓰레기 정보가 난무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온라인 문화를 개척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는 평가다. 아침편지 이후로 이와 유사한 내용과 형식을 띤 이메일이 다수 생겨나 메마른 네티즌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동훈 실장은 “아침편지의 성공 이후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벤치마킹한 유사 편지들이 수십 가지 등장했다”며 “희망, 행복, 사랑 등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경영, 철학 등 전문 분야 지식과 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등 운영 형태도 다양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네티즌들의 호감을 사고 있는 공익적 성격의 온라인 편지들이 적지 않다.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 ‘사색의 향기’, ‘행복한 경영 이야기’, ‘사랑밭 새벽편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역시 많게는 수십 만 회원을 확보하면서 서서히 저변을 넓혀 가는 중이다.
아침편지가 씨앗을 뿌린 새로운 온라인 정신 문화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지 네티즌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